키노는 1981년 레닌그라드에서 결성되어 주로 포스트펑크와 쟁글팝을 소화한 소련의 록밴드이다. 한국계 소련인인 빅토르 최가 리더를 맡았는데, 이로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알려져있다. КИНО(키노)는 러시아어로 ‘영화’를 의미하며 20세기 자유진영에 비틀즈가 있었다면 공산진영에는 키노가 있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인기를 구가했던 밴드이다. 

 키노는 친구사이였던 빅토르 최, 알렉세이 리빈, 올렉 발란스키가 결성한 '가린과 쌍곡선’이라는 이름의 밴드에서 시작한다. 이는 러시아의 SF작가 ‘알렉세이 톨스토이’의 작품에서 기원한 이름이다. 이후 올렉의 입대 후 ‘키노’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초기 키노는 철학적이라기보단다 일상을 이야기 하는 그룹이었다. 이때 나온 1집 ’45’는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2집 발매 전 리빈은 빅토르 최의 음악적 고집과 리더십에 반발하다 탈퇴하고, 원년멤버는 빅토르 최 하나만 남게 된다.

 1984년 키노는 아크바리움 멤버들과 함께 2집인 ‘Начальник Камчатки(캄차카의 지배인)’을 발매한다. 이후 키노는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레닌그라드 락페에서 성공을 거둔다. 이 당시 ‘Я объявляю свой дом... (나는 나의 집을 선언한다)'라는, 대놓고 반전/반핵 사상을 드러낸 곡으로 화제가 되었다. (위 사진은 레닌그라드 락 클럽의 실제 모습. 1991년 소련붕괴와 경제개혁의 여파로 문을 닫았지만 2012년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한다.) 

 1985년 초, 프로듀서 ‘트로필로’의 지휘 하에 앨범 '밤(Ночь)'을 녹음했으나, 트릴로프의 지나치 간섭과 버들의 불만족으로 무산되었다. 그 후 새로 작업한 ‘Это не любовь (이건 사랑이 아니야)’가 발매한다. 반면 1986년 트로필로는 '밤(Ночь)’을 무단으로 발매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가 대히트를 기록하며 키노는 큰 인기를 누린다. 그해 여름 키노는 모스크바 궁전에서 다른 두 밴드와 함께 대규모 콘서트를 진행한 후 컴필레이션 앨범 Red Wave’를 발매한다. 이는 서방에 최초로 발매된 소련의 락음반이다. 

 한편 이 시기 빅토르 최는 ‘КИНО(키노)’라는 밴드명 답게 영화배우로서도 활동했다.

 1988년, 키노는 명반 ‘Группа крови (혈액형)’을 내놓으며 정점을 찍는다. 소련 내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투어와 자유진영 국가의 대규모 락페 등에도 참여하게 된다. 1989년, 밴드는 'Звезда по имени солнце(태양이라는 이름의 별)’ 앨범을 내놓는다. 어둡고, 우울한 톤의 테마가 주를 이룬다. 이후 또 새로운 앨범의 녹음을 마무리 하던 시기 빅토르 최는 교통사고를 겪어 사망하게 된다. 소련은 충격에 휩싸였다. 결국 작업중이던 앨범은 나머지 멤버들과 스튜디오의 손을 거쳐 발매 되고, 제목은 채 정해지지 못하고 발매되었다. 키노는 이 앨범의 발매 후 해체를 선언하고 훗날 팬들은 이 앨범을 ‘키노’ 혹은 ‘검은 앨범’이라 부른다. 

 2019년, 키노의 공식 유튜브 채널이 공개되었고 재결합된 키노는 2020년 빅토르 최 사망 후 첫 콘서트를 예정한다. 이는 팬데믹으로 연기 되었고 2021년 진행되었다. 

 한편, 키노를 비롯한 많은 밴드들의 중심지이자 한때 레닌그라드라 불렸던 지역은 오늘날 상트페트르부르크라 불리고 있는데, 이 지역은 러시아 서쪽에 위치해 서방국가(유럽)과의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지역이다. 어떻게 보면 그렇기 때문에 밴드문화가 가장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이 지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제 2도시이자 러시아의 다보스포럼이라 불리는 SPIEF의 개막에 앞서 이곳을 드론폭격을 한 것이다. 어느쪽이 잘하고 못했다는 것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전쟁이라는 비극으로 여러지역과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이 마음이 아플 뿐이다. 소련정권의 아래에서도 반전/반핵사상을 적극적으로 가사에 담은 키노의 빅토르 최가 이 광경을 보면 어떤 마음일지 헤아려 보며 글을 갈무리한다.